전쟁터에서 무기가 없으면 사지에 던져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찬가지로 법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법학에 대한 지식을 확보할 수단이 없으면 많은 경우 일상적 삶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된다 . 따라서 법학 지식은 그 본질에 있어 살벌한 전쟁무기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법제도가 이러한 무기 독점을 허용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소위 로스쿨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2009년 로스쿨을 개교한 20개 대학에서는 학부(대학)에서 법학과를 폐지하였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으므로 이후 전국의 4년제 대학에서 법학과들이 거의 멸종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지만 그 중 거의 대부분은 (법학전문)대학원에 가지는 않는다. 때문에 국민들이 법학지식을 스스로 습득할 기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법학지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로스쿨제도의 창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법맹과 우민화의 길로 인도했다. 또한 로스쿨에 진학하는 극소수에게만 법학지식 독점(1년에 2000명 정도, 대학 입시생을 50만 명으로 그 비율을 계산하면 0.4% 정도이니 충분히 독점이라 할 만하다.)권을 부여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왜 이러한 ‘법학지식산업 독과점’에는 관심이 없을까? 쉽지 않은 돈벌이에 그렇게 매달리면서도 수중에 있는 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법학지식에 대한 독점권을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그토록 쉽사리 허용해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혹시 아직도 법치주의가 아닌 절대왕정과 같은 인치주의에 머물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이러한 독과점과 법맹 상태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공무원 시험과목에서 법학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바꾸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다.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수험생에게 상대적으로 까다롭게 여겨지는 법학은 시험과목에서 거의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과거 10여 년 동안 기본적인 법이론 조차 전혀 모르는 공무원들이 양산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전 국민적 분노를 불러온 한 사인(私人)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로 종착되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법치주의 포기의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법과 제도보다는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에게 매달리는 현상은 여전하다. 법치주의 이념의 보편화는 아직도 요원한 것인가? 그러나 다행히도 2022년부터 공무원 시험에서 법학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고 한다. 법과 제도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공무원이 다시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훼손된 법치의 터전을 일부라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린 것이다. 공무원은 공복(public servant)이다. 그 중 경찰은 매우 특수한 공복이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그 본연에 임무임에도 그것을 위해 국민의 인권을 “(인신구속, 각종 침해 장비 사용 등을 통하여)직접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성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공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에게는 인권의식에 대한 체질화가 특별하게 요구된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한 있더라도 국민의 인권을 절대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경찰에게는 기본권의 법, 즉 헌법에 대한 각별한 이해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경찰 본연의 직무는 문자 그대로 사건 ‘발생 이전에 미리’ 경계하고 살피는 일이다. 따라서 ‘미리’ 대처하고자 하는 것이 경찰의 본능일 수밖에 없다. 이에는 범죄예방이라는 적지 않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지적한 바와 같이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치명적 단점도 동시에 존재한다. 예컨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시민에 대한 무차별적 불심검문이나 음주측정 등은 법적으로 허용되고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명백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권침해의 한계는 경찰학이 아닌 법이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법을 모르고 올바른 경찰이 될 수는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사전 조치인 경찰작용과 달리 수사는 반드시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만 진행된다. 범죄예방 혹은 실체 진실발견보다 인권보장이 우선시 된다. 아무리 유력한 유죄 입증 자료라도 인권에 반한 위법한 절차로 수집된 것은 재판의 증거로서 자격이 부정된다. 열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명’의 억울한 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법, 형사소송법의 기본이념이다. 따라서 경찰작용과 형사소송법상의 범죄수사는 태생적으로 완전히 다른 원리에 따라 운영된다. 그렇기에 두 영역은 서로 다른 전문가에 의해 엄격하게 구별되어 다루어져야만 한다. 예컨대 경찰학을 전공하는 자가 법학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경찰학에는 범죄예방을 위해서는 무고한 자에 대한 인권침해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무의식적 경찰본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학 전공자 혹은 비전공자 혹은 경찰 스스로가 관련 법학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경찰학과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의 법학에 대한 기본이 전혀 없는 수강자들에 대한 기만이다. 범죄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경찰학이 ‘학생들에 대해 범죄’를 범할 수는 없다. 2022년 경찰시험부터 헌법, 형법, 형사소송법이 경찰학과 구별되어 각각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별하여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학생들에 대한 위법행위를 하지 않기 위해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는 이에 대해 특별히 유의하여 법학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또한 변경된 시험과목으로 응시해야할 2021년 대입 수험생들은 진학에 관한 선택을 할 때 관련 ‘전공자가 제대로 된 법학교육을 하는’ 제대로 된 교육기관인지 여부를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법학과목들의 필수과목 지정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독자적 수사권을 갖는다는 것은 수사에 대한 최종적인 종결권을 경찰이 갖는다는 뜻이다. 적절한 수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 범죄가 인정되는 사건임에도 검찰단계에서 불기소되거나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날 수 있다. 반대로 무죄인 사건인데도 기소되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법학 지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경찰시험에 법학과목이 필수로 지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인 검찰’이 행사하던 수사종결권을 경찰이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향후 경찰시험에서 법학시험의 수준이 더욱 강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경찰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전문적인 법학지식을 습득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무조건적 단순 암기를 통하여 객관식 문제를 맞추는 능력으로 경찰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민법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재산범죄에 대한 수사를 할 수가 없다. 예컨대 사기혐의자는 사기꾼이라고 순순히 자백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자는 수사기관 앞에서 매우 공손하게 거짓말을 한다. “저는 타인의 재산권을 절대 침해하지 않았습니다요”라고. 재산권 침해 여부는 재산권이 무엇인지 모르고서는 당연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재산권에 대해서는 민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러니 민법을 모르고 사기죄, 절도죄, 횡령죄, 배임죄, 손괴죄 등의 재산범죄를 어떻게 수사하겠는가? 상법을 모르는 데 기업범죄를 수사할 수 있겠는가? 국제법을 모르고 범죄인 인도와 관련된 처분할 수 있을까? 많은 형벌 규정들이 행정법에 규정되어 있다. 해당 행정법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그러한 처벌규정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제대로 된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법학 전반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출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경찰이 되기 위해서 법학을 전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이처럼 보다 높은 수준의 법학지식이 필요하다는 데에 대한 인식은 경찰조직 내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경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낮았던 법학경채의 비중을 점차 늘려가려고 한다는 경찰관계자의 말을 최근에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법학경채는 법학사만이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다. 이것은 경찰되기를 원하는 학생이 법학과에 진학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한 현실적인 이유는 보다 안정적 직장을 원해서이다. 경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법학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이와도 큰 관련성이 있다. 최근 정부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구별하는 제도를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수사경찰 제도에 대해서도 함께 보도되었다. 앞으로 상당수의 경찰들이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자치경찰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은 매우 열악하다. 만일 자치경찰이 지방재정에 일부라도 의존하게 되면 그 처우는 상대적으로 열등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국가직이 아닌 소방공무원들에 대한 처우를 보면 대략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것인지는 몰라도 최근 경찰 내부 시험에서 형사소송법 응시자가 작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수사는 형사소송법상의 제도이다. 그리고 수사경찰은 그 업무의 성격상 국가경찰일 수밖에 없다. 경찰이 되려는 사람이 법학지식에 대해 소홀히 할 수 없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이다. |
